아이슬란드 여행

뢰이가베구르 Laugavegur 트레일 - 세 번째 글

suhcs 2024. 8. 12. 01:17

이전 글에 이어...
 
트레킹 둘째 날이다. 알프타반 Alftavatn 산장 역시 식당 시설이 좋다. 산장 식당 시설은 란드만날뇌이거 산장이 제일 좋고, 알프타반 산장이 그 다음이다. 다음 날 가게 되는 엠스트라-보트나 산장이나 우리가 머물지 않은 흐반길 산장, 흐라프트뉘스케르 산장은 다소 열악하다. 화구나 조리기구의 숫자도 적고, 음식하는 곳, 식사하는 곳, 자는 곳이 함께 있다. 란드만날뢰이거 산장과 알프타반 산장은 침실 공간과 주방이 분리되어 있다. 조리도구도 젓가락, 식가위를 제외하고는 대부분 갖추고 있다. 
 

알프타반 산장 앞의 이정표. 란드만날뢰이거와 흐반길 사이에 알프타반이 있다.

 
우리는 아침식사를 차려 먹고 점심용 샌드위치까지 알뜰하게 만든 후 출발했다. 오늘은 강을 여러 번 건너야 한다. 그중 두 번은 빙하가 녹아서 흐르는 물에 발을 담가야 한다. 첫날 일정 중에도 신발을 벗고 강을 건너야 하는 곳이 있었지만 나는 꾀를 내서 상류로 올라가 돌과 바위를 뛰어 넘어 건넜다. 그닥 추천하고 싶지는 않은 것이 돌이 흔들려서 자칫하면 빠질 수 있다. 오늘은 안전하게 얌전히 신발을 벗고 건널 생각이다.
 

능선을 오르면서 내려다 본 알프타반 호수와 산장. 바로 앞에 있는 개울에는 임시다리가 있다.


시작하자마자 작은 개울이 우리를 맞았다. 여기에는 임시 다리가 놓여 있어 발을 적실 일이 없다. 강을 건너면 사면으로 놓인 길을 따라 언덕을 넘는다. 그리 높지 않은 Brattháls Ridge다. 능선에 오르면 눈앞으로 푸른 평원이 펼쳐진다. 높지 않은 산과 깊지 않은 계곡, 곳곳에 야생화가 핀 녹색 초원이다. 그렇다고 잔잔하고 목가적인 풍경은 아니다. 날이 흐려서 더 그랬을까? 거칠고 강렬하고 원초적인 느낌이 드는 초원이었다. 언덕에 올랐으니 이제 내려갈 차례. 트레일은 평원을 향해 천천히 내려간다. 평원 곳곳에는 시내가 흐르고 가까이 가니 제법 깊은 계곡도 있었다.
 

능선에 올라 내려다 본 풍경

 

갈은 초원을 따라 구불구불 이어진다. 앞에 보이는 미르탈스 빙하. 그리고 우측의 Storasula 산.


신발을 벗고 건너야 하는 첫 번째 개울을 만났다. 물살이 세지는 않았지만 발이 몹시 시려웠다. 깊지는 않아서 정강이 중간 정도 차는 깊이였다. 강 바닥은 자갈인데 둥근 자갈이 아니고 각진 돌멩이라 맨발로 건너기엔 발바닥이 아팠다. 슬리퍼를 신고 건넜는데 울퉁불퉁하다 보니 슬리퍼가 옆으로 돌아갔다. 아쿠아슈즈를 갖고 올 것을 그랬구나 싶었다.  
 

저 먼 곳에는 빙하, 여기저기 흐르는 시내, 푸른 이끼로 덮인 산과 구릉. 전형적인 아이슬란드의 풍경이다.

 
신발을 벗지 않고 건널 수 있는 개울은 더 많았고 다리가 놓인 강도 있었다. 빙하에서 흘러내리는 물은 한 줄기로 흐르지 않는다. 여러 갈래로 갈라졌다 합치고 다시 갈라지면서 대지를 나누고 있었다. 작은 구릉지대 사이로 여기저기 빙하 녹은 물이 흐르는 시내가 흐르는 곳. 이 지역을 흐반길 Hvangil 계곡이라 부른다. 그 계곡의 끝에는 흐반길 Hvangil 산장이 있다. 출발 4km 지점이다.
 


 
흐반길 산장 인근은 용암지대다. 용암이 천천히 흐르면서 만들어 놓은 물결 무늬 바위도 있고 현무암 덩어리와 용암재도 사방에 흩어져 있었다. 여기서부터는 검은 모래가 깔린 사막, 맬리펠산두르 Mælifellssandur 지역이다. 평원의 가장자리에는 야트막한 산들이 호위병처럼 늘어서 있는데 정면에 홀로 버티고 서있는 산의 모양이 심상치 않다. 원뿔 모양이 인상적인 Stórasúla 산이다. 검붉은 피부에 짙은 초록빛 이끼옷을 입고 있다. 분화구 가장자리는 날카롭게 잘려있어 신비로운 느낌이 든다. 흐반길 산장에서 볼 때는 곧추선 원뿔로 보이지만 지나면서 확인해 보니 옆면은 길게 뻗어있다. 정상부 능선이 길어서 능선을 타고 걸으며 주변을 내려다보는 트레킹을 하면 좋겠구나 싶었다. 우리는 그저 뢰이가베구르 트레일만 걸었지만 천천히 주변도 둘려보면서 트레킹을 하면 분명 즐거움이 더할 것이다. 
 

Hvangil 산장 가기 전부터 지난 후까지 유난히 시선을 사로잡는 Storasula 산. 산 정상에 오르면 주변을 모두 내려다 볼 수 있다.

 


이곳이 검은 모래밭 평원인 이유는 미르탈스빙하에서 언젠가 대규모의 빙하홍수가 났기 때문일 것이다. 한번 빙하홍수가 나면 어지간한 높낮이는 다 깎아내 평평하게 만들어 버린다. 물살과 함께 대규모의 토사가 밀려와 물이 지나간 자리를 덮어버린다. 여기는 바람도 거칠게 부는 곳이라 종종 모래폭풍이 난다고 한다. 바람이 흙을 이리 저리 날리다 보니 표면은 점점 고운 입자로 변하고 높낮이는 점차 줄어든다. 그래서 얼핏 보면 마치 검은 화산재로 이뤄진 사막처럼 보인다. 그렇다고 이곳에 생명이 없는 것은 아니다. 곳곳에 식물이 자라고 꽃도 피어 있다. 한없이 거친 땅에도 식물은 어떻게든 뿌리를 내리고, 번식을 통해 자손을 퍼뜨리며 대지를 바꿔놓는다. 비가 적게 내리는 곳은 아니고 겨울에는 눈으로 덮여 있다고 하는데 겉보기에 사막처럼 보이는 이유는 빙하 퇴적물이 성기게 쌓여 있어 바닥의 물빠짐이 좋기 때문일 것이다. 

 

바다장구채 (Silene unifora), Sea Campion으로 흔히 불린다. 트레일 내내 가장 많이 보인 꽃 중 하나다.


척박한 땅의 식물은 뿌리를 넓고 깊게 뻗는다. 뿌리는 씨알이 굵은 모래를 움켜쥐어 부수고, 그렇게 모래가 가늘어지면 진흙처럼 고운 흙이 된다. 진흙은 모래보다는 조금 더 물을 담아둘 수 있기에 촉촉해진 땅에는 더 많은 식물이 자랄 수 있게 된다. 식물이 늘어날수록 식물의 뿌리와 뿌리에 엉겨 붙은 흙은 더 많은 물을 머금을 것이고, 그렇게 조금씩 이 메마른 땅은 푸른 초원으로 변해갈 것이다. 이곳에 자라는 식물은 땅속에 숨은 뿌리의 길이가 겉으로 드러난 부분의 스무 배가 넘는다고 한다. 땅에 바짝 붙어 자라 난장이처럼 보여도 결코 작은 식물이 아니다. 뿌리 끝까지 길이를 재면 엄청나게 큰 생명체다. 가혹한 환경에서 자신을 지키고 살아남기 위해 보이지 않는 곳에서 이들은  치열하게 싸운다. 매서운 바람을 버티기 위해 더 깊게 뻗어 땅을 움켜쥔다. 땅속 깊은 곳으로 들어가 길고 혹독한 겨울 추위를 버텨낸다.
 


제법 큰 물소리가 들리기 시작했다. Innri-Emstrua 강이다. 강이 제법 크고 수량도 많다. 지금까지 마주친 개울과는 다르다. 강은 트레일 앞에서 폭포를 이루며 쏟아지고 있고 그 위로 다리가 놓여져 있다. 다리가 없다면 도저히 건널 수 없는 강이다. 폭포는 거친 물살을 연신 토해낸다. 흙탕물이다. 많은 사람들이 이 근방에 앉아 식사를 하고 있었다. 다리를 지나도 사막지대는 계속 이어졌다. 

오늘의 트레일은 초반의 짧은 구릉지대, 그리고 길게 이어지는 사막지대라 할 수 있다. 엄밀히 말하면 사막은 아니다. 강수량이 적지 않으니. 그런데 이곳에 서면 '사막'이란 말이 저절로 떠오른다. 지평선 끝까지 뻗어있는 평원에 제대로 된 풀도 나무도 없다. 황량하고 적막하다. 바닥이 고운 모래는 아니다. 현무암과 화산재가 잘게 부서져 만든 검은 흙바닥에 거칠게 부서진 돌멩이가 깔려 있다. 좌우에는 커다란 바위도 있고 산도 있다. 하지만 그 어디에도 나무는 없다. 산은 어떤 것은 검은 흙을, 어떤 것은 검붉은 흙을 높게 쌓아둔 것만 같다. 예전에 무연탄 공장에 가면 무연탄을 높게 쌓아두곤 했는데 그런 모습이다. 어떤 산은 검푸른색인데 그 색의 주인공은 이끼였다. 검은 돌과 흙 위로 이끼가 덮여 초록빛을 띄었다.
 

흐린 날이라 나무 한 그루 없는 검은 평원을 걷는 느낌이 더욱 처연했다.


검은 사막은 끝나지 않을 것처럼 이어졌다. 거칠고 메마른 풍경 속으로 우리는 그저 걸었다. 쓸쓸하고 적요해 모든 색이 소멸되는 곳. 이런 땅에서는 말하는 것조차 불순하게 느껴졌다. 꾸미거나 덧붙이지 않아야 하고, 과장도 흥분도 용납하지 않는다면 어떤 말이 남아야 할까? 풍경의 본질, 모든 것을 걷어낸 광경이 그곳에 있었다.
 
트레일을 진행할수록 사막을 이루는 흙의 입자가 가늘어졌다. 어떤 곳에선 곱게 부서진 검은 모래가 시야가 닿는 저 멀리까지 이어져 있었다. 그곳의 느낌에 숨이 막혀 한참을 쉬었다. 눈 앞에는 하늘, 그리고 검정 땅. 그 사이를 잇는 두 개의 검푸른 산이 있었다. 봉우리 부분을 누군가 뜯어낸 듯한 모습이 특징적인 Hattfell산은 이끼가 덮여 옅은 초록빛을 띄었다. 초록이지만 검은 초록이다. 어제 알프타반 호수로 걸어오며 보았던 형광빛 초록은 아니다. 생명이 살아오르는 색이 아니라 생명이 영영 가둬진 색처럼 보였다. 
 

Hattfell산. 높이는 924m. 푸른 이끼가 낀 산과 검은 화산재 모래의 조화가 외계의 어느 행성에 온 듯한 느낌을 준다.
왼쪽의 산은 Hattfell산. 오른쪽의 산은 Storkonuffel (930m). 두 산 사이로 트레일이 지난다.


황량한 사막지대가 서서히 고도를 높여갔다. 그렇게 어느 정도 올랐을까? 능선 위에 서니 눈 앞에 원시의 평원과 협곡이 우리를 기다리고 있었다. 좌측 위로는 미르탈스 빙하가, 정면 멀리에는 에이야피야틀라 빙하가 하얀 이마를 보여주고 있다. 사막의 땅은 이제 끝났다. 다시 협곡지대다. 이 협곡의 이름은 마르카플리옷 Markarfljót Canyon 이다. 협곡의 좌측, 미르탈스 빙하 바로 아래에 오늘의 목적지인 엠스트루-보트나 Emstrur-Botnar 산장이 있다. 눈앞으로 빙하가 쏟아지는 곳이다. 이렇게 빙하 가까이에서 잠들 수 있다니. 우리는 일단 산장에 짐을 푼 다음 협곡 트레킹을 하기로 했다. 
 

미르탈스 빙하가 선명하게 보인다. 산장은 두 번째 경사면 아래에 숨어 있다.


 
미르탈스 빙하의 바닥은 그저 평범한 대지가 아니다. 그 아래에는 활화산이 있다. 지금 이 시간에도 대지 가까이 마그마가 끓고 있고 마그마의 열기가 빙하의 아랫면을 녹이고 있다. 빙하가 녹은 물이 얼음 사이에 고여 있고 터널을 만들어 흘러내린다. 언제 터질지 모르는 카틀라 Katla 화산이다. 아이슬란드의 가장 큰 위험은 미르탈스 빙하라고 한다. 미르탈스 빙하보다 훨씬 작은 에이야피야틀라 빙하가 2010년에 분화했을 때도 유럽 전체의 항공편이 한 달간 마비되었다. 아이슬란드 경제도 상당한 타격을 입었다. 미르탈스 빙하는 에이야피야틀라 빙하와는 비교할 수 없이 크다. 빙하의 얼음 부피는 140 평방킬로미터다. 좌우높이가 각각 1km인 얼음 덩어리 140개가 있는 셈이다. 이 빙하 아래에 있는 카틀라 화산이 폭발할 경우 빙하의 아랫부분은 끓어올라 수증기로 변한다. 처음에는 두꺼운 빙하 덩어리에 눌려 있겠지만 이내 압력을 견디지 못하고 두꺼운 얼음 덩어리를 뚫어 버리며 폭발할 것이다. 폭발력 때문에 수증기와 화산재는 대기권 바깥까지 솟아올라 하늘을 덮을 것이고 남은 빙하는 급격히 녹아 쏟아져 내리며 일대를 엄청난 홍수로 덮어버리게 된다. 빙하홍수다. 그 위험은 상상할 수 없이 크다.
 
카틀라 화산은 역사적으로 40~80년에 한번 분화했고 마지막 분화는 1918년에 있었다. 1918년 폭발로 발생한 홍수로 인해 아이슬란드 해안선이 5km 길어졌다. 아이슬란드 남부 도시인 비크에서 링로드를 타고 동쪽으로 가다보면 빙하 퇴적물과 화산재가 섞인 채 밀려 내려온 넓은 황무지를 볼 수 있다. 대략 20km를 운전해서 가야 끝이 나는 이 넓은 황무지가 빙하 홍수의 흔적이다. 어느 방향으로 터지고 물이 흘러내리느냐에 따라 다르겠지만 카틀라 화산이 터졌을 때 빙하 바로 아래 놓인 이 산장은 얼마나 심각한 운명을 맞을까? 짐작하기 쉽지 않지만 확실한 것은 상당 기간 이 지역으로는 접근조차 어려울 것이다.

중앙의 하얀 것이 미르탈스 빙하다. 윗쪽 파란색이 대서양인데 비크이뮈르달 좌측으로 검은 퇴적물 지대가 보인다.

 

흐반길 산장과 보트나 산장 주변을 확대한 사진. 이곳 역시 빙하 홍수가 쓸고 내려와 만든 검은 퇴적물 지대다.


마르카플리옷 협곡 트레일은 뢰이거베구르 트레일에 포함되어 있는 코스는 아니다. 하지만 트레일을 걷는다면 절대 빼서는 안 되는 곳이다. 목걸이에선 체인보다 체인에 달린 보석이 가장 빛나듯 마르카플리옷 협곡은 뢰이가베구르 트레일의 본류가 아닌 곁다리 경로지만 가장 빛나는 코스다. 마르카플리옷 Markarfljót 은 엄밀히 말하면 강의 이름이다. 우리가 엠스트루르 산장 근처에서 보는 협곡은 이 강의 상류다. 협곡의 높이는 100m가 넘는다. 깍아지른 절벽이 원시의 자연을 보여준다. 마구 깎여나간 듯한, 아니 바위가 덩어리째 뚝뚝 떨어져 나간 절벽은 푸른빛, 붉은빛을 그대로 드러내고 있다. 얼마나 강한 물살이 밀고 내려왔기에 이렇게 깎인 것일까? 발원지인 틴트피얄라 빙하 Tindfjallajökull 와 토르파 빙하 Torfajökull 아래의 화산이 폭발한 순간 녹아서 쏟아져 내린 해빙수의 양을 짐작하게 한다. 

바위가 뚝뚝 떨어져 나가고 깎여 있는데 붉은색부터 노란색까지 단면의 색상이 다양했다. 그 위로 초록이끼가 자란다.


아래를 내려다 보면 오금이 저릴 정도로 까마득하다. 저 아래에는 거센 흙탕물이 흐른다. 절벽의 바위는 우락부락한 트롤의 얼굴 같기도 하고 꿈틀거리는 팔뚝처럼 보이기도 한다. 수십 명의 트롤이 이 절벽에 갇혀 울부짖는 것만 같다. 바라보는 것만으로도 기가 죽어 나는 조용히 뒤로 물러난다. 조용히 물러나 시선을 먼 곳으로 향하니 협곡은 보이지 않고 그저 녹색의 평원만 보인다. 협곡이 어찌나 좁고 깊은지 시선을 살짝만 위로 향해도 눈에 띄지 않는다. 좁고 깊은 틈. 서늘하게 숨어 있는 함정같은 협곡이다. 눈앞에 닥치기 전에는 감히 짐작도 못할 운명의 함정이다. 

 

협곡으로 떨어지는 폭포. 이 장면을 보고 입을 다물 수가 없었다.


협곡은 하류로 가면서 미르탈스 빙하와 에이야피야틀라 빙하에서 흐르는 물까지 합류해 강처럼 넓어져 결국 바다에 닿는다. 내일 우리가 걷는 길은 기본적으로 마르카플리옷 강을 오른쪽으로 두고 걷는다. 아름답다기보다는 장엄하다는 말을 붙여야 할 듯한 협곡을 한참이나 구경하고 우리는 다시 방향을 틀어 미르탈스 빙하 쪽으로 향한다. 이제 산장으로 돌아갈 시간이다. 오늘은 이제 더 이상 마실 술이 남지 않았다. 저녁 메뉴로 부대찌개를 끓였기에 소주가 절박했지만, 생각해 보면 요즘의 순해진 소주는 마르카플리옷 협곡이 주는 날카로움은 흉내낼 수 없을 것이다. 그저 강렬한 순간의 기억만 곱씹으며 잠자리에 든다.


오늘 걸은 거리는 16km이다. 고도차는 거의 없는 평탄한 길이다. 다리로 건너는 강이 네 곳이 있고 신발을 벗고 뛰어들어야 하는 강이 두 곳이 있다. 징검다리로 건너는 강도 여럿이다. 물에 뛰어들어야 하는 강 중에 첫 번째 도강은 가볍다. 두 번째 강은 길다. 길다는 것은 해빙수의 차가움을 오래 견뎌내야 한다는 뜻이다. 첫 번째 도강에서 슬리퍼가 돌아가기에 이번에는 맨발로 건넜는데, 뾰족한 돌에 발바닥은 아프고 물은 차갑고 30초 정도의 짧은 순간이지만 상당히 괴로웠다. 다시 한번 이야기하지만 아쿠아슈즈는 꼭 필요하다. 재미난 점은 도강을 할 때 남자들은 대개 바지를 걷어올리고 건넜지만 여자들은 바지를 벗고 속옷차림으로 건넜다. 요즘 여성들의 트레킹 복장은 대개 레깅스 스타일이라 그럴 수밖에 없나보다. 속옷차림으로 건넌 뒤 찬 바람에 몸을 말리는 것을 보니 얼마나 추울까 싶었다. 이 글을 보신 분이라면 되도록 걷어올릴 수 있는 바지를 입으시길.

 

다음 글로 이어집니다.